PCUSA 총회 등록과 총회 정서기 Gradye Parsons 목사님의 글
샬롬! NCKPC 회원 여러분께 올립니다.
제 222차 PCUSA 총회 등록과 총회 정서기 Gradye Parsons 목사님의 글을 번역한 링크를 소개해 드립니다.
GA registration is open http://www.pcusa.org/news/2016/3/10/ga222-registration-open-kor/
Gradye’s March Column , http://www.pcusa.org/news/2016/3/10/march-2016-hard-work-reconciliation-kor/
제 222차 총회 등록
제 222차 미국 장로교 총회를 위한 등록이 시작되었다. 약 3000명의 장로교인들 및 기타 다른 사람들이 교단의 안건 처리와 예배와 교제를 위해 모일 것이다.
중간 공의회 직원, 신학 기관 직원 및 관찰자들은 포틀랜드 오레곤 컨벤센 센터에서 6월 18-25일 사이에 열리는 총회에 온라인(online)으로 등록할 수 있다. 총대들, 자문 대표들, 총회 기관 직원들 및 선출된 회원들, 그리고 기타 초대 손님들은 총회 등록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특별 링크들을 포함하는 이메일을 받게 될 것이다.
참석자들은 등록하기 전에 무엇 보다 더 총회 의사 일정(assembly docket)과 총회 호텔 정보(assembly hotels)와 행사 일정(schedule of events)을 검토해 볼 것을 권장한다. 많은 선택 행사들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티켓이 필요하며, 그것은 등록하는 동안에 구입할 수 있다. 그러한 행사들 중 은퇴하는 정서기 그래디 파슨스의 사역을 축하하는 오찬이 총회 수요일 밤에 있을 것이다.
Auburn Theological Seminary에서 공공 참여를 위한 수석 부 대표로 섬기고 있는 Paul Raushenbush가 교단을 위한 파슨스의 37년간의 섬김을 기념하는 연설을 할 것이다. 그는 “저는 그래디 파슨스 목사의 리더십이 이끈 중요한 공헌을 인식하는 오찬의 자리에서, 그리고 미국 장로교와 전체 교회를 위해 이렇게 특별한 카이로스의 순간에 연설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라고 말한다.
2009년부터 2015년까지, Raushenbush는 The Huffington Post의 글로벌 영성 및 종교 분야에서 수석 편집장으로 섬겼다. 오찬은 총대들과 자문 대표들에게는 무료이며, 식사를 하지 않고 행사에만 참석하고 싶은 자들을 위한 방법도 마련될 것이다.
총회 참석자들은 비용을 지불하고 등록이 확정되면 총회 회의 서비스 부서로부터 이메일을 통해 공지를 받게 될 것이다. 이것을 위해서는 보통 하루 정도가 소요될 것이다. 총회 호텔 예약을 요청하는 자들은 후에 숙소 배정 통지를 받을 것이다.
등록 마감일:
* 4월 15일: 지정 좌석을 받게 될 총대, 자문 대표, 총회 기관 직원, 중간 공의회 직원 및 세미너리 직원.
* 5월 9일: 총회 숙소를 요청하는 기타 참석자들.
* 6월 3일: 사전 등록 및 티켓 판매
6월 3일: 취소 마감일 (이 날까지 취소 의사를 알리면, 취소 비용 25불이나 총 등록비/티켓 비용의 15퍼센트 중 더 많은 것을 제외한 비용이 환불됨). 취소된 행사를 제외하고는, 5월 30일 후에 취소하는 티켓 구입 비용은 총회 회의 서비스에 의해 환불되지 않음.
화해를 위한 힘겨운 일(The hard work of reconciliation)
March 10, 2016
Office of the General Assembly
Gradye Parsons, Stated Clerk
화해를 위한 힘겨운 일
어떤 말이 무심코 우리 입에서 나올 때마다 하나님은 심지어 우리의 더듬거림도 참아주시고, 우리의 무지함도 용서해 주신다. 정말이지 이러한 자비가 없다면 기도할 자유도 없을 것이다—죤 칼빈
위의 인용문에는 수학 공식이 들어있는 것 같다. 관용 + 용서 + 자비= 자유--어린 자녀들이 자기 부모들에게 어떤 것이라도 물을 수 있는 것으로 정의되는 자유. 나는 이 공식이 공동체로서의 우리 삶에도 적용될 수 있을지가 궁금하다.
헬렌 켈러는 관용이 가장 큰 정신적 (mind) 선물이라고 말했다. 관용을 베풀기 위해서는 자전거를 타고 균형을 잡으려 할 때와 똑같은 두뇌적 노력이 요구된다. 이것은 승자 독식적 태도와는 정반대의 것이다. 이것은 다른 견해들에 대해 온화한 생각을 견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할 때에 공동체는 더 나은 아이디어들을 떠올려 줄 수 있는 논의 및 토론의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프랜시스 아시스는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심게 하소서”라고 말했다. 종의 리더십에 대한 토론이 있을 때마다 적어도 한 사람으로부터 거의 항상 내가 들은 말은 “그러나 학대 받고도 잠자코 있는 사람은 되지 마세요”라는 것이었다. 이 말은 자기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면 어떤 식으로든 우리가 약해진다는 염려로부터 나온다. 이 말에는 어느 정도의 사실이 들어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보다 우리를 먼저 생각하는 것 또한 우리를 강하게 해주지는 않는다.
어떤 사람과 화해를 위한 힘겨운 일을 할 때, 나는 감정으로 가득 찬 그러한 분위기에 지배 받지 않을 수 있다. 그러한 화해를 위해서는 공동체 안의 불의나 상처와 맞서야만 할지도 모른다. 그러한 대결은 용서의 씨앗을 위한 비옥한 땅이 될 변화를 만들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Henry Melville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늘은 우리 모두에게—장로교인들 및 이교도들 모두에게—자비를 베푼다. 왜냐하면 어떤 연유에서인지 우리 모두의 두뇌가 두려울 정도로 상처가 나서 치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공동체는 모두 두려울 정도로 두뇌에 상처가 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녹색 신호등이 켜졌지만 가지 않고 머물거리고 있는 차에게 경적을 울리는 것은 우리의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유용한 방법일지 모르지만, 거기에 자비는 없어 보인다. 그 차의 운전자는 수많은 문제들로 씨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여러분의 공동체는 어떠한가? 관용과 용서와 자비가 있는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교회가 그것을 변화시킬 수 있겠는가?
번역해 주신 박선규 목사님께 감사드리며, 총회와 NCKPC를 위하여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신정인 목사 드립니다.
2016년 3월 12일